그대가 곁에 없다면...


그대가 곁에 없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부시시한 모습을 하고 잠에서 깬 채 그대를 생각할 일이 없습니다.
졸린 눈을 억지로 떠도 그댈 만날 일이 없어 깊은 잠에 더 빠질 수 있습니다.
밀려오는 잠을 뿌리쳐 가며 애써 깨끗이 씻고 준비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늦잠을 자다가 다시 오후가 다 되어서 일어나도,
이젠 그대와 함께 먹을 점심식사 메뉴를 고를 일도 없습니다.
그댈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입에 가득 채워도 내겐 괜찮습니다.
식사를 다하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을 때도 굳이 씻고 이를 닦을 이유가 없습니다.
눈에 끼인 이물도 신경써서 떼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항상 규칙적으로 깎던 너저분한 수염도 그대로 길러도 괜찮습니다.

오후 늦게서야 외출을 하기 위해 준비할 때, 그 때도 그대가 없다면..
어제 새로 산 옷을 이리저리 몸에 맞춰보며 옷을 고를 일도 없습니다.
깨끗이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머리를 정리할 때도
아무도 보여줄 이가 없으니 평상시 그대로 푸시시하게 나간데도 상관없습니다.
허옇게 튼 얼굴에 손바닥 가득 로션을 찍어 바를 일도 없습니다.
입고 갈 청바지와 흰 티에 먼지가 묻어 있어도 그냥 툭툭 털어만 버리고 나설 수 있습니다.
부시시하게 챙겨 입고선 외출을 하여 밖에 나와 이리저리 정처없이 걷고 있노라면,
그대와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항상 지겹도록 쳐다보던 은색 시계를 풀어버려도 괜찮습니다.
연락 올 이가 없으므로 매일같이 열어보던 휴대폰도,
충전이 덜되 깜박거리고 있는 그 휴대폰도 굳이 켜서 쳐다볼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나 전화가 오지 않았을까? 하고 열어보던 나지만 이젠 그런 버릇을 고칠 수 있습니다.
조금 걸어 횡단보도 앞에 서면, 혹시나 그대가 건너편에 있을까봐 눈 찡그리고 쳐다봤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서둘러 택시를 잡기 위해 건너편으로 허둥지둥 뛰어갈 일도 없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걷다가 왁자지껄한 시내거리로 왔습니다.
그대와 같이 보던 수많은 건물들도 이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날 칠 수 있습니다.
웃으며 걷던 밝은 거리들도 이제 묵묵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항상 둘이 앉아 샌드위치와 아이스티를 시켰었지만 이제 나 혼자 먹을 양만 시켜도 됩니다.
걷다가 문득 내 손이 허전함을 느껴도 항상 팔짱을 껴주고 손을 잡아주던 그대가 이젠 없기에,
그냥 바지주머리 사이로 푹 집어넣어도 상관없습니다.
사탕을 좋아하던 그 애, 언제나 사탕을 사주던 그 가게 앞에서 발을 멈출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그 안에 돈이 얼마 없습니다.
하지만 이젠 단돈 몇천원만 있다해도 내겐 든든합니다.
호주머니 속에 담배를 물고 피워도 아무런 살필 눈치도 없이 피워물고 연기를 뿜을 수 있습니다.

어스름지며 붉게 지고 있는 태양이 나를 따스하게 비출 때 그 때도 곁에 없다면..
그대 대신 태양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멍하니 하늘만 쳐다봐도 발걸음을 재촉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루종일 걷기만 하다보니 피곤해집니다.
벤치로 가 혼자 앉아 있어도 옆에서 항상 지켜봐주던 그대가 없으니 눈을 감고 푹 쉬어도 됩니다.
가방에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틀어도 두쪽 다 내 귀에 꽂을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나즈막하게 흥얼거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큰 소리로 따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저녁이 다 되어서 배가 고파 무언가 요기를 채우러 음식점으로 향합니다.
눈에 뛴 바로 그 곳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그대가 아닌 나만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시켜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배를 꺼지게 하기 위해 동전을 들고 홀로 노래방에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조용한 발라드보다 시끌벅적한 댄스곡을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밤이 다 되어서 어스름이 사라질만큼 늦었지만 아직도 난 그 시끄러운 거리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 곁에 그대가 또 없다면..
얄구진 포장마차로 발걸음이 움직여도 그냥 그대로 곧장 가면 그만입니다.
항상 배부르게 하던 맥주 대신 이젠 소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대에게 잔을 채워주던 내 손이 나의 잔만 묵묵히 채우기만 하면 됩니다.
너무 적게 마셔도 너무 많이 마셔도 배웅해 줄 이가 없으니 언제까지 들이켜도 상관없습니다.
술에 취해 몸이 못 가눌 지경이 되더라도 비틀거리며 풀린 눈을 지그시 뜨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우울해지던 술자리에서 취한 척 이제 웃음만 지어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슬퍼 붉어지는 눈시울과 떨어지는 눈물도 그대가 보고 있지 않기에 몰래 훔쳐버릴 수 있습니다.

자정이 넘어서야 술자리에 일어나도 그대가 곁에 없다면 그걸 안다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챙겨주고 바래다 줄 이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비틀거린 채 집까지 걸어가던 길에 항상 슈퍼에 들려 껌을 샀던 나,
바로 지나쳐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씹으라고 그대에게 건냈던 껌 하나 이제 고스란히 내 입에 들어갑니다.
그런 것을 챙길 필요가 없습니다.
집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지만 곁에 말 거는 이 하나 없기 때문에,
조용히 비틀거리며 길만 보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걱정하고 있을 그대가 떠오르지 않으니까 머리 속이 아프지도 않습니다.
집 앞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항상 보내던 문자도 이제 아낄 수 있습니다.

간신히 피곤에 절여 새벽쯤 집에 도착하였을 때도 그때까지도 곁에 그대가 없다면..
허름한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만 신은 채 공원으로 무작정 다시 나갈 수 있습니다.
꼬깃해진 담배 갑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피워도 걱정해 줄 이가 없어서 피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 더 피워도 상관없습니다.
공원에 앉아 언제나 그대 어깨에 올려져 있던 야위고 거칠은 손이,
문득 너무나도 시려진다 해도 그냥 가슴팍으로 깊숙히 묻어 녹여버려도 괜찮습니다.
귀까지 시려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그제서야 곁에 없음을 알고 도로 들어가면 됩니다.
방안에 들어와 아예 침대 위에 이불을 코 앞까지 덮고 눕습니다.
눈을 감고 항상 하던 기도도 누굴 위해 해야할지 모르기에 중얼거림만으로 끝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는 새벽이 갚어서야 겨우 눈을 감습니다.
감으려하는 순간 혹시나 와 있을 그대 연락을 언제나 확인해 봤던 나이지만,
그런 그대, 내 곁에 없음을 이젠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애써 지긋이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피곤에 지쳐도 그대 생각할 일이 없으니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그러곤 이제 편히 잠에 들 수 있습니다. 잠만 잘 수 있습니다.
얼마가 지나 눈을 감고 잠이 깊게 들 때 쭘이면 꿈속에서는 그 꿈속에서만은,
그대가 내 곁에 있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하루종일 그대 생각만 하며, 그대 곁에 내가 있는 모습만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나에게 야속했던 그대를, 이제 그대가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 꿈 속에서도.. 너무나도 깊이 빠져버린 그 꿈 속에서도..
그대가 내 곁에.. 내 곁에 있지 않다면..
하루내내 지쳐 피곤해 곤히 잠들어 있는 나의 눈가에는,
눈망을이 비집고 나오려는 나의 눈물이..
가득 고여 맺혀 흐르려 하는 그 눈물이..
그대가 곁에 없는 나의 불그란 뺨에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만약에..
그대가 진정 내 곁에 있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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